성경에는 우상을 찍어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만 섬기라는 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부 극단적 신앙을 가진 목사님들은, 그 말씀에 근거하여, 초등학교에 있는 단군상의 목을 밤중에 몰래 베어 버리기도 하였고,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총학생회가 학교 앞에 세워 놓았던 천하대장군을 기독 동아리 사람들이 잘라 버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런 일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 일 후에 뿌듯한 자부심과, 말씀을 실천했다는 긍지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상을 파괴하라는 성경의 명령을 잘 분석해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교회) ‘안에’ 있는 우상을 찍어 버리라는 것이지, 다른 민족과 나라 사람들이 섬기고 있는 우상을 파괴하라고 명하신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디안 족속이 이스라엘을 침략하던 시절에, 하나님께서 기드온 사사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사사기 6:25).”
그런데, 어떤 바알과 아세라 상을 찍어 버리라고 하시냐면, 이방인 미디안 사람들의 바알과 아세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드온의 아버지, 즉 ‘이스라엘 안에’ 있는 우상을 찍으라는 말입니다. 남의 나라에 들어가서 그들의 우상을 파괴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교회) 안에서 그들의 신앙을 오염시키는 우상을 파괴하라는 말입니다.
출애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제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을지어다(출 34:12~13).”
얼핏 보면 위의 구절은 ‘다른 민족’의 우상을 파괴하라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주변국이 아니라, 곧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게 될 ‘가나안 땅’의 우상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땅이니, 타 민족의 우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파괴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애굽의 우상을 무너뜨리라거나, 주변 국가들의 우상을 찍어 버리라는 명령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최근에 몇몇 사람들이 인도의 사찰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했다고 하여 논란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사찰 안에 있는 우상들을 찍어 버리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찬송 부르고 기도하는 것으로 대신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로 싸워야 하는 것은 ‘교회 안의 우상’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국 기독교의 도끼날은 엉뚱하게도 ‘교회 밖’의 우상을 향해 있습니다.
슬프게도 ‘교회 안의 우상’은 엄청난 속도로 커 가고 있습니다. 화려한 건물의 우상, 성공의 우상, 대형화와 권력의 우상… 그런데 이런 교회 ‘안의’ 우상들을 계속 감추고 즐기기 위해서는, 교회 ‘밖의’ 우상들과 싸우는 흉내를 내어야 하기 때문에, 도끼날이 교회 밖의 우상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부의 문제를 감추기 위해서는, 교회 밖의 우상과 치열하게 싸우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큼 좋은 전략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찰이나 타 종교 시설에 가서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을 ‘땅 밟기’라고 한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여리고를 무너뜨릴 때도 땅 밟기를 하지 않았느냐”, “아브라함에게도 ‘네가 밟는 땅을 준다’고 하시지 않았느냐”…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12지파의 땅 분배가 확정된 뒤에는,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더 넓히시겠다고 남의 나라 땅을 밟고 오라고 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교와 땅의 확장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진심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면, 그리고 꼭 땅 밟기를 하고 싶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영적인 땅 밟기’입니다.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삶을 삶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밟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육적인 땅 밟기는 분쟁만 일으키게 되어, 결국 기독교에 대한 반감만을 일으킬 뿐입니다.
십자군 당시, 많은 십자군 병사들이 타 종교인들에게 예수를 믿을 것이냐 아니면 죽을 것이냐를 강요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믿게 된 소수의 사람들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러한 폭력적 수단은, 장기적으로 볼 때 기독교를 더욱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인도의 사찰에 가서 우상 무너지라고 기도하며 찬양을 하는 것은, 그 행위를 한 사람들 마음속에 잘못된 뿌듯함을 주는 것 외에 어떤 선한 결과도 없습니다. 육적인 땅 밟기는 결국 교회를 파괴하는 행위인 것을 꼭 명심해야겠습니다. 정말 선교를 하고 싶다면, ‘교회 안의 우상’과 싸워 깨끗한 교회를 만듦으로써, 영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밟으십시오.
유익희 / 밴쿠버 평안교회 목사